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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히계세요 여러분 저는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졌나?
    카테고리 없음 2023. 4. 4. 22:07

     

     

    '회사-집-회사-집'을 반복하며 이게 맞는 삶인가 싶고, 대인 관계 스트레스 때문에 모든 게 다 꼴보기 싫은게 직장인일 것이다. 산소호흡기 달 듯이 주말에 숨 한 번 돌렸다가 다시 출근하는 생활을 잠시 멈추고, 진짜 휴식을 하기 위해 휴직을 생각 중이라면 아래 글을 통해 작게나마 고민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몇 달 동안 휴직 기간을 가져본 내 소감은 이렇다.

     

    휴직의 가장 큰 장점은? 정답 '시간이 엄청 많다'

    휴직의 가장 큰 단점은? 정답 '시간이 엄청 많다'

     

    이게 뭔 소리인가 싶겠지만, 휴직자의 장단점은 시간이 많아도 너무 많다는 것이다. 계획적으로 휴직한 사람이 아니라 갑작스러운(지병 등) 휴직계를 낸 사람이 그렇다. 우울증 치료를 위해 1년 동안 휴직 신청을 한 나는, 마치 정년퇴직자의 삶을 미리 체험해보는 기분이다.

     

     

     

    휴직 시작 첫날.

    아침에 눈을 떴는데 오전 11시다. X발... 근데 생각해보니 이제 회사를 안 가도 된다. 그 자체만으로 너무 행복해지고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다. 직장인 친구들을 놀리기 위해 단톡에 '이불에 누워 있는 이모티콘'도 괜히 올린다. 그리고는 앞으로 행복한 휴직생활을 즐기는 나를 상상한다. 아침 7시에 미라클 모닝을 하는 나. 의자에 앉아 따뜻한 차를 마시며 잠시 명상에 잠기는 나. 낮에는 '핫플레이스라서 주말엔 사람이 바글바글하지만 평일에는 한적한 카페'에 가서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는 나. 따뜻해지면 한강에 돗자리 깔고 햇살을 맞으며 독서를 하는 나.. 신이 나서 휴직 전에 적었던 버킷리스트를 꺼내 본다. 버킷리스트를 점검하며 생각나는 것들을 하나하나 더 추가해본다. 

     

     

    휴직 일주일 째.

    놀랍게도 버킷리스트를 모두 끝냈다. 1년동안 세계일주라던가, 해외에서 한달 살기 라던가 아주 거창한 버킷리스트를 가진 사람들도 많겠지만 나에게는 그럴 정도의 큰 자금은 없었다. 그래서 생활 속에서 해보고 싶었던 소소한 리스트들을 적었었다. 평일 점심에 전시회 가기, 한강에서 책 읽기, 버스 타고 종점까지 가보기, 혼자 맛집 가기, 하루종일 게임하기 등등.. 너무 소소해서 마음만 먹었다면 하루만에도 다 끝냈을 것이다. 

     

    생각보다 낭만적이지 않았던 것도 있었다. 한강은 생각보다 추웠고, 독서는 안 한지 오래되어서 30분이 지나자 집중력이 떨어졌다. 한강까지 와서 핸드폰을 하자니 현타가 온다. 결국 1시간도 안되어서 돗자리를 고이 접어 가방에 넣었다. 한강에 왔다갔다 하는 시간이 더 길었을 거다. 핫플레이스 카페는 어찌된 일인지 평일에도 사람이 많다. 다 나 같은 휴직자인지, 연차를 쓴건지, 학생인건지, 백수인건지? 다 쫒아내고 싶은 마음이다(다른 사람도 똑같은 마음이겠지). 주말처럼 웨이팅만 없을 뿐 사람이 바글바글한 것 똑같다. 내가 생각하던 것과 많이 다른 분위기에 커피만 얼른 마시고 시장통같은 카페를 벗어난다.

     

    물론 버킷리스트를 하나하나 지우면서 쾌감도 컸다. 휴직을 안했다면 행동으로 실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버킷리스트에도 적어놨겠지. 하지만 금방금방 사라져버리는 리스트들을 보며 조금의 씁쓸함도 있다. 사실은 내가 직장을 다니면서 마음의 여유가 좀 더 있었다면, 다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복잡미묘한 감정을 느끼며 진짜 할 게 더 없나 싶어 버킷리스트가 담긴 아이패드를 끄적인다. 

     

     

    휴직 한달 째.

    이제 진짜 할 게 없다. 내 상상력의 범주 안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 이제는 아침에 일어나면 두뇌 풀 가동을 해야한다. 오늘은 무엇을 해야하지? 점심먹기, 저녁먹기, 잠자기 빼고는 나머지 시간이 모두 비워져 있다. 마치 초등학생 시간표 같다. 현재가 비워지자 이제는 미래에 매달리기 시작한다. 매달 25일에 찍히던 월급이 안 찍히는 것도 불안하다. 자기계발이라도 해야겠다며 앞으로의 계획을 세운다. 마음에도 없는 오픽학원 시간표를 찾아본다. 근데 휴직하고 영어공부 할거면 차라리 경력 안 끊기게 회사를 다니는 게 낫지 않나? 회사 때문에 휴직했는데 이제는 회사를 조기 복직할까도 잠시 생각한다. 휴직을 처음 시작했을 때 내가 이런 생각을 할 줄 몰랐는데 미친 것 같다. 휴직기간동안 휴식을 취하는 게 아니라 복직하기 전까지 버틴다는 느낌이 든다. 도대체 나는 뭘 하며 쉬어야 하나? "잘 쉬었다!" 라고 할 때 잘 쉬는 것은 뭔가? 나는 앞으로의 11개월을 어떻게 잘 쉬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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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년의 휴직. 어쩔 수 없이 신청했다 하면 맞는 말이고, 자유롭게 신청했다 하면 그 말도 맞았다. 우울증과 불면증으로 인해 마음뿐 아니라 몸까지 완전히 망가진 상태였다. 한번 걸린 몸살 감기는 한달 넘게 낫지 않았고, 회사 가는 길은 마라톤을 완주한 사람처럼 숨이 찼다. 어느날 '회사를 가느니 차라리 죽어야 겠다!' 라는 사고회로까지 간 이후에야 내 몸상태를 이해했다. 도저히 일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어떤 의지로 이겨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누가 뭐라하든 어쩔수 없이 나는 휴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1년은 내 마음대로 정한 기간이었다. 내 상태에 대해 솔직하게 말씀 드리니 감사하게도 팀장님과 임원분이 승인을 해주셨다. 평소에 나는 미디어에서 말하는 MZ세대 답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회복을 위해 1년 정도 쉬어야할 것 같습니다" 라고 패기있게 지를 때는 나도 MZ가 맞긴 하구나 싶었다. 

     

    나의 사수는 "자기돌봄을 잘합시다" 라는 문어체를 자주 쓰시는 특이한 분이셨는데, 휴직하기 전날도 "1년동안 자기 돌봄 잘 하고 오세요" 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나는 "네 알겠습니다"라고 했지만 사실 무슨 뜻인지 몰랐다. '자기돌봄'이라는 말은 처음 듣는다. 나는 '자기계발'이라는 단어를 주로 입에 달고 다녔기에 나의 성장이 곧 나의 돌봄이라고 생각했다. 성장하려면 현재에 머무르면 안된다. 휴직을 시작할 때 나는 잘 쉬고 오겠습니다. 라고 대답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휴직기간을 통해 나를 더욱 성장시켜서 오겠습니다 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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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울증 치료를 위해 정신과와 심리상담센터를 병행해서 다녔다. 심리상담센터에서 나는 웃기게도 언제쯤 치료되나요? 라는 질문을 했다. 낫지 않는 것에 불안함을 느꼈다. 빨리 나아야 내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상담선생님은 '휴직기간동안 잘 쉬셔야 합니다' 라고 웃으시면서 대답했다. 나는 같이 웃었지만 이런 뻔한 대답을 들으러 다니는 게 아니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때 선생님이 한 가지 질문을 던지셨다. "산책할 때 무슨 생각을 하시나요?" 나는 곧장 대답했다. "저의 미래요." 짧게 대답했지만 말하기 부끄러운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성공한 나의 모습. 고층 아파트에 사는 나. 외제차를 끌고 다니는 나. 임원이 잘했다고 칭찬해주는 나. 지인들에게 "00이 진짜 대단하다"라고 치켜세움받는 나. 나는 산책을 좋아했고, 산책을 하며 대단한 사람이 된 나를 상상하는걸 좋아했다.

     

    "그럼 그 생각을 하고 나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다. 나는 "진이 빠져요"라고 대답했다. 곧바로 나온 대답에 나도 놀랬다. 선생님이 원하는 대답을 해드리고 싶어서 한 게 아니었다. 실제로 그렇게 느꼈다. 산책을 하고 나면 진이 빠졌다. 왜냐하면 원하는 나를 힘껏 상상하고 나면 현실에서 '그렇게 되지 못한 나'를 마주해야했기 때문이다. 붕 뜬 구름위에 있다가 갑자기 하강해 발이 땅에 닿는 느낌이었다. 

     

    선생님은 산책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산책에 정답이라도 있나? 라는 반발심이 들었지만 선생님은 '나'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산책을 하며 '현재'를 느껴야 한다고 했다. 그날 바람의 냄새, 눈에 보이는 풍경,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 귀에 들리는 소리, 발에 닿는 땅의 느낌. 원래 그렇게 매일 산책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놀랍게도 서른 살 가까이 한 번도 해본적이 없다. 산책을 하며 걷는 길 이외에는 주변을 인지하며 느껴본적이 거의 없다. 상담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연습하세요. 현재를 보는 것도 연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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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속을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오랜만에 날씨가 화창했다. 버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볕이 따스했다. 점심시간대라 그런지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점심 먹으러 가는 모습이 보였다. 사원증의 색깔이 각각 달랐다. 날이 따뜻해져서 그런지 다들 셔츠에 슬랙스를 입었다. 어쩌다 보니 상담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풍경에 집중하게 되었다. 풍경에 집중하는 순간만큼은 미래에 대한 내 고민이 사라졌다.

     

    회사를 다닐 땐 버스를 타면 항상 얹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버스 손잡이를 꽉 잡으며 일 생각을 했었다. 안그래도 차멀미가 있는데 회사에 가서 할 일을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 거렸다. 휴직을 하고 나서도 비슷했다. 종점까지 가는 겸 나의 미래에 대해 고민해보자(?)라는 생각을 했다. 왜 내가 버스에 앉아있던 긴 시간이 재미가 없었는지 알았다. 왜 한강이나 카페에 가도 재미가 없었는지 알았다. 아무래도 나는 그 순간에 집중을 잘 못했던 것 같다.

     

    회사에 다니면서도 그럴 수 있었으면 내가 많이 아프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딱히 후회한다거나 자책한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일찍 알았다면 좋겠다는 것 뿐이지 이러나 저러나 휴직하고 맘 편하게 노는 게 훨씬 좋다. 나는 현재에 머무르는 법을 몰랐던 것 뿐이다. 상담 선생님이 그것도 연습이라 하셨으니, 연습을 하면 반드시 늘 것이다. 

     

    지금 정의하기에, 잘 쉰다는 것은 현재를 힘껏 즐기는 것이 아닐까 싶다. 여행을 간다면 다음 일정 체크가 아니라, 내가 서 있는 동네는 어떻게 생겼는지, 내가 있는 곳의 바람은 어떤지, 땅을 밟는 느낌은 어떤지. 이제 연습을 해보고 싶다. 남은 기간은 현재에 집중하는 연습을 해야지. 너무 길게 느껴졌던 나날이 이제는 매일 휴직 첫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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